이순신 장군 명언과 업적
궁금이 2022. 11. 29. 00:08이순신 장군 명언과 업적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무신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준을 통솔했던 영웅이었습니다. 1545년 한성부 건천동에 태어나 31세 때인 157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수많은 업적을 이루며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살아있는 영웅 이순신 장군. 영웅을 넘어 성웅으로까지 불리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 어록과 업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 명언과 어록
勿令妄動 靜重如山 (물령망동 정중여산)
"망령되게 움직이지 말고 조용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라"
옥포 앞 바다에서 첫 해전을 앞둔 조선 수군 장수들에게 신중하고 침착하게 전투에 임할 것을 당부하며 이른 말입니다. 옥포해전은 임진왜란 시 조선 수군의 첫 승리이자, 조선군이 거둔 첫 승리였습니다. (옥포파왜병장, 5월 10일 기록)
今臣戰船 尙有十二 (금신전선 상유십이)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사옵니다"
원균 휘하의 조선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거의 전멸하자, 선조는 “수군을 파하고 육전에 힘쓰라”는 교서를 내립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수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고 있어서 명량해전에 앞서 올린 장계에 수군을 계속 지휘하겠다 주장하며 남긴 말입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1척의 배를 더 추가하여, 13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군과 맞서 싸워 승리합니다. (이충무공행록 기록)
必死則生 必生則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이순신 장군이 오자병법의 내용을 인용한것으로 절대적인 수적 열세 속에서 큰 해전을 치러야 하는 수군의 장수들에게 굳은 정신력을 가지고 싸움에 임할 것을 당부하며 이른 말입니다. 다음 날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은 위와 같은 결사의 정신으로 전투에 임하여, 13대 133이라는 엄청난 전투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합니다. (난중일기 1597. 9.15 기록)
大將不可不和 讐賊不可從遣 (대장불가불화 수적불가종견)
"대장으로서 화친을 말할 수 없을뿐더러 이 원수를 놓아 보낼 수는 없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철군을 명하여, 가토 기요마사 등은 비밀리에 철수 이동하고 있었으나 고니시 부대는 조선 수군이 가로막고 있어서 철군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니시 부대는 명나라 진 도독에게 몇 차례 뇌물을 바치고 길을 열어 달라고 청하였고, 진 도독은 왜적을 보내주자고 했으나 이순신 장군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한 말입니다. 이에 진 도독은 부끄러워했다 합니다.
日本之人, 變詐萬端, 自古未聞守信之義也 兇狡之徒, 尙不斂惡
"왜적은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교활하고 흉악하여, 그 악랄함을 감추질 않습니다"
1594년 강화 협상을 하며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명나라 칙사인 담종인이 '함부로 왜군과 교전하지 말고 자리를 지킬 것'이란 내용의 통보인 금토패문(禁討牌文)을 보내자, 이순신 장군은 '답담도사금토패문'이라는 글을 올리며 반박한 말입니다. (답담도사금토패문, 담종인에게 보내는 답장 중에서)
今日固决死 願天必殲此賊 (금일고결사 원천필섬차적)
"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앞두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서 했던 맹세로, 전장에 나서는 이순신 장군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어록입니다. 그러나 이 맹세대로 이순신 장군은 적을 섬멸하고 맹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백사집)
戰方急 愼勿言我死 (전방급 신물언아사)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이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명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11월 19일 퇴각하는 적과 노량 앞바다에서 대전을 치르는 선상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며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이충무공행록 기록)
이순신 장군 업적
1.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은 수군을 이끌고 해전을 치렀는데 23전 23승을 하였습니다. 이 승리로 7년 간의 전란을 종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명장입니다.
2. 전선을 증강시키고, 개량형 신무기 거북선 개발과 정철, 지자, 현자총통 등 신형 전선과 무기를 개발하여 왜란 전부터 조선 수군의 전력을 확충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3. 각종 해전술을 창안하고 명령계통을 일원화하여 조선 수군의 강력한 전투력을 배양했으며, 한산도에 과거장을 설치하여 군 인사 관리를 혁신하였습니다.
4. 군 운영의 발전을 추구하여, 전쟁 기간 동안 왜선 700여 척을 나포, 격침시켜 세계 해전 사상 길이 남을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玉浦)에서 적선 30여 척을, 사천(泗川)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적선 13척을 격파했습니다. 당포(唐浦)에서 20척, 당항포(唐項浦)에서 100여 척을 각각 격파했으며, 7월 한산도(閑山島)에서 적선 70척을 무찔러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을 이끌었습니다. 7월 안골포(安骨浦) 해전에서 승리하고, 9월 왜군의 근거지 부산에 쳐들어가 100여 척을 침몰시켰습니다.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熊川)의 왜군을 격파하여 남해안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 명나라 수군이 원정을 온 후, 죽도(竹島)에 진을 옮기고 장문포(長門浦)에서 왜군을 격파,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의 작전에 큰 타격을 가하였습니다. 정유재란 발발 후,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어, 명량으로 출전, 12척의 함선으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격침시키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듬해 철수에 돌입한 적선 500여 척이 노량(露梁)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陳璘)의 수군과 공동으로 적군을 기습, 승리로 이끌었으나 이순신 장군은 이 해전에서 전사합니다.
여기까지 이순신 장군 명언과 업적을 알아봤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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